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헨리 6세 (문단 편집) == 가족관계 == 참고로 모후인 발루아의 카트린은 오웬 튜더와 재혼하여 에드먼드 튜더를 낳았는데, 장미전쟁을 종식시키고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는 바로 이 에드먼드 튜더의 아들이다. 즉, 헨리 7세는 헨리 6세의 이부조카. 에드먼드 튜더는 랭커스터, 나아가 플랜태저넷 왕조의 부계 후손은 아니였지만 그의 이부형이었던 헨리 6세에 의해 왕족으로 인정받았다.[* 사실 부계로는 왕족이 아니었어도 당시 기준으로 어머니가 잉글랜드보다 더 강대국이었던 프랑스 공주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유럽 왕가는 외국 출신이어도 신분이 높으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인정받았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인 로트링겐(로렌) 가문과 로트링겐 가문의 분가인 기즈 가문, 이탈리아 [[사보이아 가문]]의 프랑스계 방계인 사부아느무르 가문 등은 프랑스 궁정에서도 준왕족 취급을 해주었다.] 위의 글을 보면 알겠지만 헨리 7세는 잉글랜드 왕실의 혈통과 거리가 상당히 먼 사람이다.[* 사실 헨리 7세의 어머니인 [[마거릿 보퍼트]]가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의 증손녀다. 마거릿의 친정인 보퍼트 가문은 곤트의 존의 사생아인 존 보퍼트가 랭커스터 가문에서 분가한 가문이기 때문에, 사실 모계혈통으로 보자면 헨리 7세도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자 랭커스터 왕조의 혈통인 건 맞으니 그렇게까지 먼 방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헨리 7세는 자신이 에드먼드 튜더의 아들이자 헨리 6세의 조카란 사실을 계승권 주장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따온 헨리 7세를 즉위명으로 삼았고 [[헨리 8세|자신의 둘째아들]]의 이름도 다시 헨리라고 지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